No. 77
유기견은 아직 믿음을 접지 않았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19쪽
유기견은
믿음을
앞에 펼쳐 두지 않는다
그러나
접지도 않았다
믿음은
기대처럼
날카롭지 않았고
확신처럼
빠르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치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유기견은
믿음을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증명은
응답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접지 않았다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접는다는 것은
끝을 정리하는
행위지만
유기견에게
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믿음은
사용되지 않은 채
몸의 한쪽에
평평하게
놓여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믿지 말라고
그러나
믿지 말라는 말은
배신을
이미 겪은 쪽의
언어다
유기견의 믿음은
배신되지 않았다
다만
응답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래서
유기견은
아직
믿음을
접지 않았다
사회가
모든 것을
정리된 결론으로
접어 넣을 때
그 믿음만
끝내
접히지 않은 채
문 앞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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