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기견은 발소리를 헷갈리지 않으려 애쓴다
♪ 음악 2:20
About
한 편을 읽고, 한 곡을 듣고, 한 생명을 기억합니다.
강사모 유기견 시음악관은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에 실린 100편의 시와, 각 작품에 연결된 음악을 온라인에서 감상하는 전시관입니다.
가족을 기다리는 생명의 시간을 시와 음악으로 만납니다. 작품을 천천히 감상하고, 마음에 남은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간직해 주세요.
로그인 없이 누구나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자동으로 재생되지 않으며, 재생 버튼을 누른 작품의 음악만 흐릅니다.
“이름이 지워진 순간부터, 기다림이 몸이 되고, 그 시간이 구조가 되어, 끝내 존재만 남는다.”
Prologue
이 시집은 유기견을 불러내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부르지 않아도 이미 여기에 남아 있는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기견이라는 말은 존재의 이름이 아니라 사건의 이름이다. 그 말이 붙는 순간, 시간은 이미 한 박자 늦는다.
누군가의 온기를 기억하는 몸이 먼저 그 자리에 있었는데, 이름은 나중에 왔고, 그 이름은 너무 차가웠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유기견을 바라봤다. 길 위에 멈춰 선 몸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을, 발소리에 반응하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는 그 작은 동작을 지켜 보았다. 그것이 슬픔인지 적응인지 나는 한참을 구별하지 못했다.
떠남이 끝난 뒤에도 하루는 계속됐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향으로 구조는 반복 되었다. 유기견의 몸은 그 사이에서 스스로 자세를 배워갔다. 그 자세가 너무 익숙해 보여서, 나는 오히려 더 오래 그 앞에 서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유기견은 연민의 대상이 아니다.
슬픔을 요구하지 않고, 교훈을 건네지도 않는다. 다만 이름이 사라진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몸이 어떤 방식으로 여기에 남아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이 시집의 문장들은 당신을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장면 앞에서 잠깐, 발걸음을 늦추게 한다.
끝을 말하지 않기 위해 결말을 만들지 않았고, 희망을 말하지 않기 위해 절망을 과장하지 않았다. 읽는 동안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의무는 없다. 다만 이미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아직 여기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잠시 함께 바라보게 될 뿐이다.
매년 10만 마리 이상의 생명이 거리로 버려진다. 그 숫자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숫자 뒤에 이름들이 있었고, 이름 뒤에 눈빛들이 있었고, 눈빛 뒤에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을 다 더하면 얼마나 긴 기다림이 될까. 나는 그것을 생각하다가 밤을 넘긴 날이 많았다.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작은지 나는 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쓴다. 글을 쓰는 일이 생명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존재를 기억하는 일은 할 수 있으니까. 기억되는 것과 잊히는 것 사이에서, 나는 기억하는 쪽에 서고 싶었다. 이 시집은 한 마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반복되는 현실에 대한 기록이고, 구조에 대한 증언이며, 그럼에도 끝내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응시다.
부르지 않았기에 남았고, 남았기에 시간을 견뎌냈다.
그 시간이 끝내 우리를 부르고 있다.
2026. 03월의 어느날, 시집을 펼친 당신에게로.
— 최경선,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서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