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76

유기견은 문 앞에서 계절을 센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16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76번 「유기견은 문 앞에서 계절을 센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날짜를
알지 못한다
대신
문 앞의 공기가
몇 번 바뀌었는지를
몸으로 센다
햇빛의 각도가
조금씩 낮아지고
바닥의 온도가
천천히 식어갈 때
계절은
말없이
지나갔다
문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고
유기견의 자세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바람의 냄새,
털 사이로 스며드는
습기의 밀도,
그늘이 머무는
시간의 길이였다
유기견은
그 변화들을
놓치지 않았다
계절은
기다림을
앞으로 밀지 않았고
뒤로 되돌리지도 않았다
다만
문 앞에
차곡차곡
쌓였다
사람들은 말한다
시간이 흘렀다고
그러나
흘렀다는 말은
떠날 수 있을 때의
언어다
유기견에게
계절은
흐른 것이 아니라
문 앞에
남겨진 것이었다
그래서
유기견은
문 앞에서
계절을 센다
사회가
시간을
지나간 것으로만
정리할 때
그 자리에서는
아직도
계절이
하나씩
조용히
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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