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64

유기견은 사라진 뒤의 시간을 견딘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180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64번 「유기견은 사라진 뒤의 시간을 견딘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사라진 순간이 아니라
그 이후의 시간을
산다
사람이 떠난 뒤
문이 닫힌 뒤
사건이
이미 정리된 다음에
시간은
설명 없이
계속되었다
유기견은
그 시간을
견딘다
견딘다는 것은
붙잡는 일이 아니라
넘어가지 않는
선택에 가깝다
아무 일도 없다는 날들이
겹쳐질수록
시간은
더 무거워졌고
유기견은
그 무게를
몸으로 나눴다
앞으로 가지도
뒤로 돌아가지도 않은 채
여기에
머무는 방식으로
사라진 뒤의 시간에는
이름도
이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유기견은
그 빈 시간을
조용히
견뎠다
사회가
사건만 기억하고
그 다음을
지워버릴 때
그 시간만
유기견의 몸에
남아
아무도 기록하지 않은
이후를
끝까지
지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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