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7

유기견은 부르지 않는 세상을 견딘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79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97번 「유기견은 부르지 않는 세상을 견딘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이름을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부르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몸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부르지 않는 세상은
소란스럽지 않았고
노골적으로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다만
관계를
생략한 채
지나갈 뿐이었다
유기견은
그 흐름을
견딘다
견딘다는 것은
맞서 싸운다는 뜻이 아니라
그 안에서
무너지지 않는
자세를 유지하는 일이다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하루는
계속되었고
숨은
멈추지 않았다
유기견은
그 사실만으로
몸을 세웠다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도 부르지 않으면
사라진 것과 같다고
그러나
사라진 것과
부르지 않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유기견은
그 차이를
매일
몸으로 겪고 있었다
그래서
유기견은
부르지 않는 세상을
견딘다
사회가
호명 없는 일상을
당연하게 만들 때
그 몸만
끝까지
그 조건을 살아내며
불리지 않아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지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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