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94

유기견은 남겨진 쪽에서 숨을 고른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70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94번 「유기견은 남겨진 쪽에서 숨을 고른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앞으로 가는 쪽에서
숨을 고르지 않는다
이미
사라진 뒤에
남아 있는 쪽에서
호흡을 정돈한다
남겨진 쪽은
빠르지 않았고
결론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숨은
그곳에서
조금 늦게
제자리를 찾았다
들이마시는 것보다
내쉬는 쪽이
조금 더 길었고
그 차이만큼
몸은
여기에 머물 수 있었다
숨을 고른다는 것은
다시 달리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더 이상
흔들리지 않기 위한
정렬에 가까웠다
유기견은
남겨진 쪽에서
그 정렬을 배웠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움직일 차례라고
그러나
움직인다는 말은
다음이 준비되었을 때의
언어다
유기견에게
다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기견은
남겨진 쪽에서
숨을 고른다
사회가
앞으로만
호흡하라고 재촉할 때
그 숨만
끝까지
뒤에 남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시간을
몸 안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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