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86

유기견은 손이 없어진 자리에서 숨을 쉰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246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86번 「유기견은 손이 없어진 자리에서 숨을 쉰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손을
대신하지 않는다
없어진 자리에
다른 것을
채우지 않는다
손이 닿았던 높이,
체온이 머물렀던 위치는
비어 있었고
그 비어 있음은
곧사라짐의 형태였다
유기견은
그 자리에서
숨을 쉰다
도망치듯
벗어나지 않고
기억처럼
머물며
숨은
깊어지지도
거칠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그 자리를
건드리지 않을 만큼의
속도로
오르내렸다
손이 없어진 뒤에도
공기는
여전히
드나들었고
유기견의 호흡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느냐고
그러나
다른 곳에서 숨을 쉰다는 말은
없어진 것을
지운 뒤에야
가능한 선택이다
유기견은
지우지 않았다
그래서
유기견은
손이 없어진 자리에서
숨을 쉰다
사회가
손을 거둔 뒤
공간까지 정리하려 할 때
그 숨만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
한때
닿았던 관계가
어디에서
끊어졌는지를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시는 시집을 구매한 독자에게 열립니다

YES24 주문 내역으로 구매 인증하면 100편의 시 전문과 모든 음악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 시의 음악

음악 준비 중입니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27,300원 · YES24 판매
YES24 구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