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53

유기견은 남겨진 쪽의 자세를 알고 있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148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53번 「유기견은 남겨진 쪽의 자세를 알고 있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어디로 가지 않는
자세를 안다
떠나는 쪽의 방향이 아니라
남겨진 쪽의
균형을 먼저 배웠다
몸을 기울이지 않는 법,
기대가 실리지 않는 각도,
움직이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위치
그 모든 것이
남겨진 쪽의 자세였다
유기견은
중심을 앞에 두지 않았다
앞은
이미 여러 번
비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게는
안쪽으로 낮아졌고
자세는
바닥에 가까워졌다
남겨진 쪽의 자세는
버티는 모양이 아니라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유기견은
그 방식을
몸으로 기억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움직이지 않느냐고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떠난 쪽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에 가깝다
유기견은
남겨진 쪽의
자세를 안다
사회가
계속 앞을 재촉할 때
그 몸만
뒤에 남은 자리의
무게를 감당하며
아직 비워지지 않은 쪽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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