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34

유기견은 부르지 않아도 고개를 든다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최경선 · 시집 87쪽

시집 『유기견이라는 슬픈 이름이여』 34번 「유기견은 부르지 않아도 고개를 든다」 수록 그림

유기견은
이름이 들리지 않아도
고개를 든다
소리가 아니라
공기의 변화에
먼저 반응한다
문이 열릴 때의
미세한 마찰,
발걸음이 바닥을
망설이며 누르는 순간
그 이전의 정적이
먼저 몸을 깨운다
부름은
확신을 전제로 하지만
유기견에게
확신은
오지 않는 쪽에 더 자주 있었다
그래서
부르지 않아도
고개는 들렸다
혹시라는 가능성이
아직
완전히 소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드는 일은
기대가 아니라
확인의 과정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인지
멈출 수 있는 사람인지
이번에도
아무 일 없을 것인지
유기견은
그 판단을
눈보다 먼저
목의 각도로 계산했다
다시 내려놓기 쉬운 높이로
고개를 들었다
실망이 반복되면
각도는 낮아졌고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습관이라고
그러나 그것은
습관이 아니라
아직 끝내지 않은 질문에 가깝다
유기견은
부르지 않아도
고개를 든다
사회가
응답을 멈춘 이후에도
확인해야 할 것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몸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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